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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탐방 역사속인물 김창룡

김창룡

金昌龍 조선, 항일기(고종9-?) 판소리 명창

조선 초기의 무신. 본관은 기계(杞溪). 자는 자성(子盛), 호는 서호산인(西湖山人). 참판 해(解)의 아들이며 성품이 청렴결백하고 근엄하고 9군(郡)을 역사(歷仕)할 때 명성과 공적세운 바 있는 문신

출사 및 관직

고종 말기와 민족항일기에 활약한 5명창 중의 한 사람으로 꼽히고 있다. 충청남도 서천군 횡산리에서 출생하였다.

그의 할아버지는 진양조를 처음으로 판소리에 넣었다는 김성옥(金成玉)이고, 아버지는 판소리에 삼공제비를 응용하였다는 김정근(金正根)이다. 따라서, 판소리 명문에서 태어난 셈이다. 아우 창진(昌鎭)도 명창으로, 한때 고종으로부터 참봉의 직계를 받기도 하였다.

7세 때 아버지에게서 판소리를 공부하였고, 13세 때에는 이날치(李捺致)에게 1년간 판소리를 배웠다.

그뒤 오랫동안 홀로 공부하다가 32세 때 서울에 올라와 연흥사(延興社)창립에 공헌하였고, 1933년에는 송만갑(宋萬甲)ㆍ이동백(李東伯)과 조선성악연구소를 만들어 후진을 양성하는 한편 창극공연에도 참가하였다. <적벽가>와 <심청가>를 잘하였고, 특히 <심청가> 중에서 '꽃타령'과 <적벽가> 중에서 '삼고초려(三顧草廬)' 대목을 잘하였다.

원래 그의 집안은 경기도 및 충청도지역에 전승되는 중고제(中古制)소리를 이어오고 있었는데, 김창룡도 또한 자기 가문의 소리제를 그대로 이었다고 볼 수 있으나, 전승이 끊어졌고 취입한 음반만 남아 있다. 그의 소리는 오늘날 전승이 끊어진 중고제 판소리연구에서 매우 귀중한 자료가 된다.

현재 남아 있는 여러 음반 중에서 <적벽가> 중 '삼고초려',단가 중 <장부한 丈夫恨>, <수궁가>에서 '수정궁(水晶宮)들어가는데', <심청가>에서 '화초타령'은 걸작으로 꼽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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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4-07 09: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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